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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실크로드의 탐험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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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작성일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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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실크로드 주요 탐험가 및 연구자의 생몰년도를 모아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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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1833~1905년)
: 독일 지질학자이자 지리학자로, 오늘날 폴란드령에 속하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에서 숨을 거뒀다. 1860~1872년에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를 여행했으며, 그 여행길에서 돌아와 1872년 중앙아시아와 서역 땅을 '실크로드'라 이름 붙였다. 1875년부터 독일 본대학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해, 이후 라이프치히대학, 베를린대학에서도 교수로 재직했다. 당시 독일에서 활동한 지리학자 중 다수는 리히트호펜의 제자였다.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1839~1888년)

: 러시아 군인 장교로,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태어났다. 현재는 군인으로서보다 실크로드 탐험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870~1873년 실크로드로 첫 탐사에 올랐고, 1876~1877년에 이뤄진 두 번째 탐사에서는 로프노르 호수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후 1879~1880년 세 번째 탐험에서 프르제발스키말을 발견했으며, 1883~1885년 네 번째 탐사를 이어갔으나 네 번째 탐사에서 돌아온 지 3년 만에 4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루돌프 회른베(1841~1918년)

: 독일 인도학자이자 문헌학자로,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인 부모가 인도(영국령)에 머물던 때에 태어나 회른베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실제로 회른베가 해독한 자작나무 불교 경전 역시 영국 정부의 의뢰로 연구를 시작한 것이며, 회른베는 오렐 스타인과도 공동 작업을 한 바 있다. 회른베는 인생 말년의 1899년부터는 옥스포드 대학에 머물며 공식적인 활동은 줄인 채 중앙아시아와 인도에 관한 연구를 이어갔다.


알베르트 그륀베델(1856~1935년)

: 독일 고고학자이다. 리히트호펜과 나이를 비교하면 스물셋이나 연하다. 미술가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미술사와 아시아어를 공부하고 과거 어마어마한 서역 미술의 보고였던 독일 베를린민속학박물관에서 32세 무렵인 1888년부터 일했다.1899년 그륀베델은 러시아 탐험대의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실크로드를 탐험했다. 이후 1902~1903년에 걸친 독일의 첫 투루판 탐사를 이끌었으며, 1904~1905년의 투루판 두 번째 탐사 때는 네 살 어린 고고학자 동료인 알베르트 폰 르 코크와 함께 탐험대를 이끌었다. 이 두 번째 탐사 때 투루판의 베제클리크 석굴 벽화 다수가 약탈됐다. 그륀베델은 50대를 바라보던 1905~1907년 독일의 세 번째 투루판 탐사대에서도 선두에 섰는데, 쿠차의 키질 석굴 벽화를 떼어내 간 것은 이때이다. 귀국해서는 고고학자로서 은퇴해 논문을 쓰며 마지막 시기를 보냈다.


알베르트 폰 르 코크(1860~1930년)

: 그륀베델보다 네 살 어린 독일 고고학자로, 르 코크는 일생을 양조업자이자 와인 상인으로 일하다 40세 즈음인 1900년 무렵에야 고고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1904년부터는 투루판 탐험대에 합류했다. 르 코크는 경력은 짧지만 역시 독일 베를린민속학박물관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했던 연이 있었다. 이후 독일 투루판 탐험대 대부분을 그륀베델과 함께했으며, 그륀베델이 은퇴한 후에도 1913~1914년에 이뤄진 독일 네 번째 투루판 탐험대를 이끌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탐험은 영영 중단된다.


오렐 스타인(1862~1943년)

: 헝가리 출신 영국 고고학자로, 1862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유대계 부모 밑에 태어났다.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등을 공부했으며 영국과 독일 대학에서 고고학과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동양학을 전공하며 24세 무렵까지 수학했다. 이후 1887년 영국령 인도에 있던 기관의 고고학부에서 일하고 인도 라호르에서 동양학 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했으며, 주로 영국 정부에 협조했다. 스타인은 1898년 스벤 헤딘이 첫 번째 실크로드 탐험에 실패한 후 출간한 탐험기인 『아시아를 지나』를 읽고 처음으로 실크로드 탐험을 결심한다. 스물한 살 연상인 루돌프 회른베와 편지를 나누며 도움을 구하고 공동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이다. 그렇게 스타인은 1900~1901년, 1906~1908년, 1913~1916년, 1930~1931년 총 네 차례에 걸쳐 실크로드 탐사를 했다. 첫 탐사 때는 호탄의 라왁 사원지를 발견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그로부터 3년 뒤 영국으로 귀화했다. 두 번째 탐험 때는 돈황 막고굴을 발견했는데 이 공적을 인정받아 1912년에 기사 작위를 받게 된다. 이후로도 인도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 아시아 각지를 다니던 중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80세의 일기로 삶을 마무리했다.


스벤 헤딘(1865~1952년)

: 스웨덴 지리학자로, 10대 때 첫 북극해 항로를 개척한 한 탐험가가 귀국한 걸 목격하고 탐험가로서의 꿈을 키우다 독일로 가서 리히트호펜 밑에서 지리학을 공부했다. 리히트호펜의 실크로드 명명으로부터 3년 후 프르제발스키가 로프노르 호수를 발견했다고 발표하자 이를 갈던 스승 리히트호펜의 권유로 스벤 헤딘은 1893년 첫 탐험길에 올라 1895년 실크로드에 발을 디디나 이 여정은 대실패로 돌아가 1898년 귀국한다. 그러나 헤딘은 1899~1902년 두 번째 탐험을 떠나 이번에는 로프노르 호수를 찾았으며 이 호수가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헤딘은 아직 30대 중후반의 나이였다. 이후로도 헤딘은 1905~1908년 세 번째, 1927~1933년 네 번째 탐험을 이어갔으며 다녀올 때마다 탐험기를 출간했다.


오타니 고즈이(1876~1948년)

: 일본 탐험가였으나 프르제발스키와 함께 주요 탐험가 중에서는 지리학이나 고고학을 전공하지도, 동양학을 공부하지도 않은 인물이다. 오타니는 일본 정토진종을 이끌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부유하게 자랐으며 영어를 공부하고자 영국으로 유학을 간다. 유학 시절 자신보다 열여섯 살 연상인 알베르트 폰 르 코크, 열한 살 연상인 스벤 헤딘과 어울리다 실크로드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27살 무렵이던 1902년 오타니는 처음으로 실크로드로 탐험을 떠났다. 이후 1914년까지 세 차례에 이르는 실크로드 탐사를 했으나 1914년 즈음 해서 오타니가 탐험에 끌어다 쓰던 집안의 재정이 흔들리자 약탈해온 미술품들을 팔아야 했으며, 일본이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을 때 자신이 아끼던 실크로드 컬렉션을 들고 중국 여순으로 피난을 갔다가 이 오타니 컬렉션은 여순에 남게 된다.


폴 펠리오(1878~1945년)

: 프랑스 동양학자로, 1878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경쟁 대상이었던 오렐 스타인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리다. 유년 시절에는 외교관을 꿈꾸며 영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다 프랑스에서 저명하던 중국학자 에두아르 샤반과 만나게 된다. 샤반은 어린 펠리오에게 산스크리트어의 대가 실뱅 레비를 소개해줬고, 펠리오는 이 둘을 따라 외교관의 꿈을 접고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중국학을 공부하던 펠리오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00년 중국 북경으로 파견됐으며, 이때 의화단의 난에도 휘말리는 등 파란만장한 시기를 보냈다. 겨우 프랑스로 귀국한 1901년에 펠리오는 겨우 23세의 나이로 프랑스 극동학원(통칭 EFEO)의 교수로 임용돼 1904년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근무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펠리오는 첫 실크로드 탐험을 가서 돈황을 찾았으나 이미 몇 달 전 오렐 스타인이 방문한 뒤였다. 그래도 언어에 재능이 있었기에 남은 것 중 가치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1909년 귀국한 펠리오는 돌아오자마자 스승 샤반으로부터, 펠리오가 찾은 돈황 문서는 위조 문서라는 기소를 당해야 했지만 결국 승소한다. 이후 펠리오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교편을 잡다가 1945년 67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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